19일 수요일 첫공은 리차드 윈저-케리 비긴, 30일 일요일 밤 막공은 샘 아처-한나 바살로. 애초에 노렸던 대로 두 명의 에드워드와 킴을 다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봤던 게 누구였는지는 결국 못 알아냈지만-_- 개인적으로 샘 아처의 에드워드와 케리 비긴의 킴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둘이었다고 속 편하게 생각하련다. 안 그러면 저 둘의 조합을 못 본 게 끝까지 한스러울 것 같다.OTL

1년 하고 약 2개월 만에 간 엘지아트센터는 여전했고, 그래서 좀 꿀꿀해졌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없구려. 내가 오밤중에 파슨쇼했던 골목의 파파이스는 커피빈으로 바뀌긴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얼굴에서 열이 올라온단 말이다 어헛헛헛.

가위손은 무용적 요소가 적다. 춤을 많이 안 춘다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동작들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백조의 호수하면 떠오르는 특징적인 춤 같은 것이 가위손에는 부족했다는 얘기다. 가위손을 철컥철컥 움직이는 것으로는 좀 임팩트가 약했음.

좋아하는 부분은 1막에서 킴의 방 장면과 토피어리 정원 장면, 2막에서 얼음 조각상 장면과 마지막 듀엣 장면. 쓰고 보니 킴과 에드워드가 같이 나오면 그저 좋아했나 싶기도 하구나.; 킴의 방 장면 같은 경우는 볼 때마다 항상 울컥하게 되는 것이... 슬픈 부분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벽에 붙어있는 킴의 사진들을 본 에드워드가 꿈을 꾸는 것이겠지만, 표현 방식이 정말 꿈처럼 아련해서 그런갑다. 런던에서 처음 봤을 때 사진 속의 킴이 움직이는 줄 알고 순간 깜짝 놀랐었음. 얼음 조각상 장면은 킴이 예뻐서 좋고... 크흠. 토피어리 정원과 마지막 듀엣 부분은 '가위손이 없다면(보통 사람들과 같다면) 가까워질 수 있을 지도' 라는 가정에서 '가위손이 있더라도(보통 사람들과 다르더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 의 확신으로 연결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가위손 없는 듀엣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가위손을 달고 추는 듀엣이 더 감동적이 될 수 있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문제는, 머리로는 저렇게 이해했지만 막상 그대로 와닿지가 않더라는 것이었음. 마지막 듀엣은 뭐랄까 김 빠진 사이다 같았다. 런던에서 처음 봤을 때와 내한 첫공은 마냥 좋았지만 막공은 세 번째로 보는 것이다 보니 단점이 더 잘 보였나 싶기도 하지만. 백조도 후반부가 약간 정신없이 마무리 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가위손 2막은 더 심하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진행되고 있구나, 하고 있으면 어느 새 에드워드가 사고를 치고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으니. 크리스마스 파티 부분에서 군무가 너무 길다. 마을 사람들이 춤 추는 것에 에드워드의 감정이 묻혀서 이후의 사건들이 뜬금없어 보였다.

그래도 킴 할머니가 가위를 들고 서 있고 뒷 배경에 에드워드의 그림자가 비치는 마지막 장면은 좋다. 기우뚱하고 킴을 보려는 에드워드의 동작이 참 아렸음. 아, 그 전에 마을 사람들이 쫓아와서 에드워드에게 몰려 들었을 때 순식간에 에드워드가 사라지고 큰 가위 하나만 남는 장면, 결국 언제 어디로 사라지는지 못 봤다... 마술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하는겨. 백조는 침대에 구멍이라도 있지. 무대 옆 배경 사이로 들어갈 것 같은데 눈을 부릅뜨고 봐도 놓치다니.

리차드 윈저의 에드워드는 표정이 살아있는 편이고 웃을 때 귀여웠는데 샘 아처의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일 때가 귀여웠음. 실제로도 그런 뚱한 입매이긴 하더라만.;; 커튼콜 때 장미를 손에 들 수 없으니까 그 뚱한 얼굴에 장미를 한 송이 지그시 문 모습이란...orz 훌륭한 팬서비스였다.

커튼콜 때 눈 내리는 위치가 너무 앞쪽으로 몰렸더라. 런던 공연에서는 좀 더 뒤쪽까지 내렸는데.

막공 본 날 기분이 별로여서 분장실 쪽에 갈까말까 하다가 결국 갔다. 싸인 받을 때 항상 고뇌스러운 게, 모든 무용수들에게 받자니 분신 한 두명은 있어야 할 것 같고, 특정 몇 명에게만 받자니 다른 무용수들에게 왠지 미안하고 그렇다.orz 소심한 나. 어차피 늘 특정 몇 명에게만 받고 말지만 기분이 가시방석 같아서 원. 하여간 싸인 받은 건 스콧 앰블러, 에타 머핏, 샘 아처, 케리 비긴, 소피아 허들리.
사진 제목: 스콧 아저씨의 푸근한 미소.(아저씨 맞겠지;) 사진은 딸랑 요거 하나 건졌다. 뒤에 살짝 에타씨도 보인다는 것을 위안 삼겠음.-┏ 에타씨는 카맨 볼 때도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그냥 무대에서 혼자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이... 여자 주인공보다 예쁘면 어떡하세요.OTL 스콧 아저씨는 다른 분들이 사진 같이 찍자고 하니까 흔쾌히 승낙하고는 갑자기 콱 껴안고 포즈 취해주심. 그 순간 나도 같이 찍자고 할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이 1그램 정도 들었음. 소피아 나올 때 어느 분이 이름 외쳐주니까 기뻐하더라. 반가웠다. 히히. 막공에 킴을 했던 한나는 안 나오고 케리가 나오기에 싸인 받고 그 뒤에 샘이 나왔다. 리차드와 한나의 싸인까지 받으면 주역은 클리어인데 샘이 가니 파장 분위기가 되어설랑, 그냥 슬슬 나와버렸음.

이제 내년 7월에 오는 백조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커튼콜 끝나고 나갈 때 "내년 백조의 호수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방송이 나오니까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려나. 두렵구나 예매 전쟁. 헐헐...

그린 대원이 유럽 여행에서 포획해온 백조 장식. 오근 고마우이♥
이건 실수로 플래시 터뜨린 사진인데 색이 이쁘다. 빛나는 것 같군.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cartoon&no=96290

과제 하다말고 노닥거리던 내 뒷통수를 시원하게 후드려 팬 만화. 연갤 구경 안 간지 꽤 오래 됐는데 아놔...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소름끼치는 느낌 되게 오랜만이다. 이 분 정말 본좌급. 내가 이래서 만화를 사랑한다니까.

고우영 화백을 처음 안 게 초등학교 4학년, 큰삼촌 방에서 십팔사략을 건졌을 때였나. 왜 건졌다고 표현하냐면 당시 내 취미가 '남의 집 놀러가서 책장 뒤지기'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4학년 무렵은 애들용 책에서 슬슬 어른들이 보는 활자 작고 빽빽한 책으로 눈을 돌릴 때였다.(그렇다고 내가 건실하며 학구적인 소녀였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게... 그 무렵 건진 책이 마계마인전(로도스도 전기), 퇴마록, '소설' 목민심서, '소설' 토정비결, '소설' 동의보감 등등이었다. 나의 미래를 한 눈에 밝혀주는 이 라인업-┏) 그러고보면 첫사랑님하인 홈즈씨는 작은삼촌 방에서 만났지.; 하여간 외가 쪽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이 환영받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4남매 중 가장 책을 좋아하는 분이 바로 큰삼촌 되신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시중에 있는 삼국지는 작가별로 다 가지고 계실 정도.(물론 고우영 삼국지도 포함) 이제는 큰 외숙부라고 불러야 쓰겄으나 십년 이상 입에 붙은 호칭이 쉽게 떠나지를 않아서리. 친/외 호칭도 어릴 때는 시골/답십리 였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내가 답십리할머니라 부르는 분이 사실은 외할머니였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어찌나 묘했던지. 그런데 내가 배운 것 좀 써먹겠다고 '외할머니'라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되려 섭섭해 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엄니께 들었음. 그래서 그 뒤로도 몇 년간 우리 외할머니는 답십리할머니셨다. 아니 근데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지금도 기억 나는데, 당시 신혼이었던 큰삼촌 집에는 방이 두 개였다. 하나는 안방, 하나는 서재. 방문을 열면 한 쪽 벽을 채운 책장과 그 안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내가 읽을 수 없는 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고우영님의 십팔사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얘넨 만화니까(..). 그 특유의 성인용 입담이나 묘사 장면을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몇 년 후였지만, 그 때는 뭣도 모르면서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재미있으니까. 나중에는 아예 세트째로 빌려가서 1년 정도 우리 집에 막 굴렸는데 지금은 그저 빌려주신 큰삼촌께 감사할 뿐이다. 나 같으면 절대 안 빌려준다. 애가 책을 무슨 꼴로 만들지 모르는데 그걸 빌려주냐 미쳤다고...orz 몇 년 뒤에 삼촌 딸이 피*츄를 그려달라고 했을 때 군말없이 그려준 이유가 이 때문이었음. 하도 찔려서.-_-

그래서 결론: 말만 하지말고 고우영 화백 콜렉션 얼른 완성하자. 일단 십팔사략하고 삼국지.

지르려고 갔다가 고뇌 중: 일지매도 좋고 임꺽정도 좋은데...... 아이고 사려고 보니 왤케 많냐.OTL

위 만화 또 보고: 다 좋지만 '배트맨이라고 불러라' 여기랑 그 앞뒤 컷들 오나전 예술d-_ㅜb '조지고 부신다' 캡! 이런 오마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오랜만에 닥치고 힛갤 백만개 쎄워주고 싶은 이 심정.

5일 덧: 시험 공부 중 머리를 비우고 십팔사략과 삼국지 지름.@_@ 쿠폰과 마일리지로 만팔천원 할인 껄껄껄... 후환이 두렵군. 엄니 죄송혀유. 근데 왜 같은 팔만원이라도 책이 공연 티켓보다 체감 공포가 더 클까. 스무 권과 한 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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