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있다.

단지 못 먹고 지낸다는 것만 빼면... 여행 왔을 때 호텔과 B&B에서 먹었던 영국식 아침 생각하고 하악하악 기대했더니 기숙사에서 주는 아침은 오로지 시리얼과 빵 몇 개가 전부인 콘티넨탈!!ㅇ<-< 나의 토마토와 콩과 계란과 베이컨과 소시지를 돌려줘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긴 영국이자나! 나에게 고기를 달라!!<-

나중에 학교 선생님이 말하시길, 그게 영국식이긴 한데 현재 영국인들은 대부분 콘티넨탈로 먹는다고. 아침에 시간이 없으니까. 여보세요들 전통은 좋은 거예요 전통을 지켜달라그...ㅠㅠ 슈밤 이로써 아침을 거하게 챙겨먹고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시리얼로 때우려던 계획이 깔끔하게 박살났스빈다.ㄳ

요리하는 데 소질도 흥미도 없는 나로선 하루 하루가 전쟁 같다. 학교 끝나고 오늘 저녁은 뭘 먹나 싶어 마트를 둘러보다 보면 내가 여기에 공부를 하러 온 건지 장을 보러 온 건지 모르겠더란. 관광은 커녕 오로지 대형 마트만 6종 구경해봤다.-_-; 매일매일 사다 날라도 냉장고에는 항상 먹을 게 없더라며 푸념하시던 엄니의 말씀이 뼈에 사무치게 와닿는 요즘. 잘못하면 자취하는 법만 배워갈 것 같은 위기의식마저 느끼고 있음.

그렇다고 뭘 만들어 먹는 건 아니고 전자렌지 땡류의 인스턴트로 연명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냉장고가 부실하여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세상에 냉장고 내부를 가로세로깊이 25센치쯤 되는 공간으로 분할해놓고 열쇠를 각각 달아놨더라. 이런 냉장고 처음 봤다. 그 공간도 두 명이 나눠 쓴다.; 막 왔을 때는 먼저 쓰는 사람이 거의 다 채워놔서 뭘 집어넣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반 정도를 내가 차지하고 있음. 그래도 우유 넣고 토마토 몇 개 넣고 샌드위치 속이랑 감자 등등 넣으면 끝이라능. 냉동실도 없어서 냉동 식품은 꿈도 못 꾸고, 생수는 그냥 방에 두고 마시고 있고 그렇다. 아 쓰다 보니 눈밀난다.ㅜㅜ

안 그래도 방에서 양말에 긴바지 긴팔티 후드가디건 입고 지내고 그대로 자고 그러는데 냉장고 때문에 날이 더 추워지길 바라는 지경이다. 그러면 토마토나 감자 등등은 창가에 두면 될 것 같아서. 영국 집들 난방 형편없다 말은 들었는데 이 지경인 줄은 몰랐음. 낮에는 밖이 더 따뜻하다.ㄱ-

사실 아직은 인스턴트에 안 질려서 괜찮지만(마트 가면 눈 돌아가게 많다 전자렌지 땡류... 다만 비싸서 함부로 못 사먹을 뿐-_-;) 만약 앞으로 내가 요리를 해먹고 싶어지면 걱정되는 것이, 부엌은 그냥 보통 사이즈인데 20명이 공유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요리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기다려야 한다. 아놔.

그것 말고도 세탁실 있다고 그래서 당연히 공짜인 줄 알았더니 사람은 60명인데 세탁기 하나 건조기 하나, 공짜도 아니고 무려 세탁 한 번에 육천원, 건조는 사천원. 여기 날이 거의 항상 흐린데다 기숙사에서는 밖에 말리는 것도 아니고 안에서 말려야 하니까 건조기가 필수나 다름없는데 둘 다 쓰면 빨래 한 번에 만원 돈이다!! 슈밤 이런 걸 기숙사 소개에 써놔야지 도대체가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안 알려주고 말이야. 조낸 속았구나. 역 근처에 싼 빨래방이 있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거길 가야하나 고민 중이다. 정녕 빨래 들고 언덕길을 오르내려야 하나.

방은 괜찮은 편이다. 아니 방만 괜찮나? 뭐야 그러네??-_-; 침대도 내가 쓰던 침대가 주니어 사이즈;였건만 여기 침대는 더 작다. 자다가 몸 돌리면 문자 그대로 벽을 차게 되는 슈퍼슈~퍼싱글. 이 정도 가격대에 방 깨끗하고 샤워 부스 딸려있다는 건 좋은데 방은 당연하고 화장실도 내가 청소해야 하며, 여기 물은 또 석회질이셔서 샤워하고 바로 물기를 닦아내지 않으면 물방울 자국이 하얗게 남는다... 아니 닦아내도 남는다. 아무래도 욕실 청소용 세제?를 사다가 닦아줘야 할 것 같음.

기숙사 사람들 하고는 아직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국적은 다양한 편이지만 60명 중에 한국인만 10명 이상 되는 것 같다.; 내가 좀 소심하고 낯을 엄청 가리기 때문에 첫 주에는 정말 방에서 나가기가 싫었는데 저번 주말 웰컴 파티 이후 조금 편해졌다. 수녀님들도 좋은 분들이고. 여기는 수녀원에서 운영하지만 종교 제한 없고 강제로 미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8학기 내내 채플에 나가야 했던 대학 생활과 비교해 보니 새삼 천주교는 참 관대하구나 싶다.

그래도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건물 출입 금지라는 규율은 있음. 주중에 공연 보면 외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 학교 소셜 프로그램으로 그리스 보러 간 애들 어떻게 하려나.;;

학교 생활은 아주 좋음. 밥청소빨래 요문제들만 없으면 두 배로 좋을텐데 슈밤^_T 선생님이 두 분인데 둘 다 잘 가르치고 재미있다. 특히 담임 선생님 격인 저스틴이 느무 웃겨서ㄲㄲㄲ 매일 아침 6시 30분 눈 뜨기 싫을 때마다 '안 되지 오늘도 저스틴 재롱 보러가자!' 하면서 일어난다능. 저스틴암쏘쏘리벗알라뷰<- 근데 저스틴 볼 때마다 말입니다. 나이도 젊고 키도 187인가 그렇고 결정적으로 머리를 박박 밀어놔서 백조떼를 보는 것 같...ㅇ<-< 머리 민 건 아마 쿵푸 매니아-_-;여서 그런 듯하지만. 암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수업 중간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업따.ㅇ<-<

다른 선생님인 힐러리는 영국인이어서 발음이 좀 알아 듣기 힘들지만, 저스틴이나 힐러리나 천천히 말하는 편이라 이해하는 데 별 문제 없음. 수업 첫날 잘 들리기에 기고만장 했다가 듣기 시험 보고 좌절했다능-_-; 슈밤 무슨 놈의 테이프가 그렇게 빨리 말하지(.....) 암튼 힐러리는 나이가 엄니 뻘 되지만 역시 재미있게 잘 가르치고 저스틴보다는 좀더 교정을 많이 해주는 편. 저스틴 시간에는 그룹별로 게임을 많이 하고 힐러리 시간에는 교재를 더 많이 쓰고 그렇다.

학교에 국적 제한 있다더니 거짓말이었는지 학생의 1/3은 한국인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많은 건 일본인이고; 유럽 애들은 방학 끝나서 많이들 돌아갔음. 얘네는 비행기가 몇 만원 이러다보니 몇 주씩 짧게들 오더라. 좋겠다. 쩝. 우리 반은 나까지 한국인 4, 일본인 5, 스페인 2, 브라질 1, 독일 1, 스위스 1. 같은 레벨이라도 유럽 사람들이 확실히 말을 유창하게 한다.

친해진 사람들이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_-;;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첫날 레벨 테스트 같이 보고 친해진 다른 반의 한국 언니가 일본 사람들을 많이 알아서 다같이 얘기할 때는 영어를 쓰지만 일본인들이 금방 돌아갈 예정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서양 애들하고는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는 게 어렵더라그...ㅇ<-<

저번주 금요일에 학생 둘이 떠나서 찍은 단체 사진. 왼쪽 두번째가 저스틴이다. 초상권 따위 무시하고 저스틴만 확대해서 올릴까 하다가 참았음.ㄲㄲㄲㄲ 이게 다 애죵입니다?


방 사진들


방문 열면 바로 보이는 책상. 가운데가 옷장이고 그 오른쪽이 화장실 문인데 짤렸음.

화장실. 방바닥이 카펫이라 슬리퍼를 신고 다녀야 하는데 발이 축축한 상태로 슬리퍼 신는 게 영 싫어서 지금은 거금 주고 산 깔개를 깔아놨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돈이 나가더라. 아, 내 돈.

샤워 부스. 이 작은 공간을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삽질을 했던가...-_);;;;

옷장 안. 엄니가 이민 가방 말고 캐리어 사자고 하셔서(그것도 다음에도 쓸 수 있게 적당히 큰 걸로-_-;) 그냥 캐리어에 짐을 꾸렸더니 압축팩에 압축해도 다 안 들어가더라. 무게는 남았는데. 겨울 옷들이랑 전기장판은 선편으로 받을까 싶다.;

기숙사 소개에 침대 매트리스/ 이불/ 베개 커버가 없으니 가져오라고 했는데 도저히 캐리어에 안 들어가서 오자마자 사려고 했었다. 근데 와보니 있더라구...?(- -) 돈 굳었으니 잘 됐지만 뭥미 이거...

침대 맞은 편에 있는 책장 겸 수납장. 텅텅 비어있다. 캐리어는 저기 보이는 저거랑 기내용 사이즈로 해서 두 개 들고 왔다. 작은 건 저 가방 안에 들어가있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이민 가방을 샀어야 하는데 싶다.

서랍 내부. 이것저것 다 귀찮을 때 방에서 때우려고 시리얼 사다 놨다. <-

작은 서랍장. 화장대로 쓸까 했는데 방에 거울이 없어(.................) 뭐하자는 플레이냐 이거. 사실 마트 6종 제패한 게 욕실 매트랑 거울 좀 싼 것 찾다보니 그렇게 된 거기도 하다. 거울은 학교 근처랑 동네 중고샵도 5군데 가봤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아직 못 샀음.

냉장고 대용으로 쓰는 공간...인데 아직 가을이고 방이 서향이라 오후 3시쯤 해가 들어오기 때문에 우유가 이틀을 못 견디고 치즈화-_-;;;; 하더라. 못 마시고 버린 우유가 1/3은 되는 듯 그나마 우유 가격은 한국하고 비슷하거나 조금 싼 편이라 망정이지.

책상. 침대도 그렇지만 책상도 참 부실해 보인다능. 식탁도 아니고 말이져...

도창교원 및 창이빠 런던지부입니다.(..) 스탠드에 붙여놓은 거, 여신님이라 불리시는 도창교원님이 만든 놈3 에스디 팬시이다. 글타 여기까지 가져왔다.-_) 은혜롭게도 3차 모임 때 만난 교원들에게 공짜로 뿌리셨다. 이분이 책 내시면 세 권 사야되는데 살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교원은 화가 나고 눈밀이 납니다. 오덕오덕. 사실 작은 서랍장에 있던 검은책도 도창 십구금 소설책이라능? 잠 안 오면 한번씩 읽어준다능?

책상에서 본 방문. 여기부터는 도착한 날 사진이다. 책상이 휑...

창밖 풍경. 운 좋게 1층, 아니 2층;이고 서향방이라 학교 갔다오면 따땃하게 볕도 들어오고 그런다. 여기는 2층을 1층이라고 불러서 방 번호도 1로 시작함... 잠깐 그럼 1층에 있는 방에는 호수가 없나? 확실히 1층에 개인 방은 없긴 한데 그럼 그 많은 방을 이름을 붙여놨나;;;; 암튼. 이 때는 인터넷 케이블이 없어서 노래나 들으려고 창가에 저렇게 해놨었다. 슈ㅣ밤 없으면 없다고 알려줘야지 방에서 인터넷 된다고만 써놓으면 알게 뭐냐! 결국 4만원이나 주고 샀다. 한국에서는 몇 천원 하지않나 이거-_-;; 아니 그냥 내가 쓰던 거 뽑아오면 공짜인데. 마우스도 그냥 쓰던 거 뽑아왔구만 젱장.

해지기 전에 한장. 도착해서 며칠은 계속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오락가락 했었다가, 저번주 목요일쯤부터 오후에는 날이 화창했었음. 어제부터 다시 흐리고 비 오고 그런다. 파란 하늘 보기 진짜 힘들고 항상 하얀 하늘이다.;; 비도 오다말다 그러니까 귀찮아서 우산 안 들고 다님. 영국인들이 왜 그냥 비맞고 다니는지 단박에 알겠더라.

정원. 여름에는 여기서 바베큐 파티도 하고 그랬는 모양임. 슈밤 고기 먹고싶다 고기... 나무 뒤에 하얀 건 성모 마리아 상인 듯. 암튼 서향 방이 걸려서 다행인 게, 복도 건너 동향 방에서는 이웃집들이 보이고 결정적으로 부엌 및 식당에서 창문이 보여서 그쪽 사는 일본인 친구는 하루종일 커튼을 쳐놓고 지내는 모양이더라.

창밖 오른쪽. 더 나가면 바로 대문이고 도로다. 2차선이라 시끄럽지 않음. 여기는 웬만한 차도가 2차선이라 차들이 속도를 많이 못 내서 조용함.(더불어 사람이 우선이라 무단횡단이 무단이 아니다.;;) 여기 와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방에 있으면 정말 조용하다는 거. 소음이 전혀 안 들린다. 공사 소리가 다 뭐냐!

하지만 교통비는 정말 살인적임... 기숙사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어서 버스를 주로 타는데 한 번에 4000원이다.; 교통카드로는 1800원쯤? 학생 카드로 하면 더 할인된대서 저번주에 신청서 보내놨는데 아직도 안 오고 있음. 얘네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은행 업무 같은 것도 대부분 우편으로 한다고 함. 성질 급한 사람은 미파치고 팔짝 뛰기 딱 좋다.

버스가 제 때 오는 것도 아니고, 배차간격 11분 주제에 15분은 예사요 최장 25분까지 기다려도 봤다. 그놈의 학생 카드가 빨리 와야 지하철 2-3존으로 충전해놓고 급하면 지하철을 탈텐데. 여기가 3존이라 2-3존으로 충전하고 1존으로 놀러갈 때는 버스로 갈아타고 간다고들 함. 저렇게 충전하면 버스도 같이 되는데 버스는 존 제한이 없다. 교통비도 비싼데다 티켓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느 게 이익인지 따지다 보면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저 캐단순한 우리나라 교통비 시스템이 최고임. -_)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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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잘 살아있고, 도리안도 간신히-_-; 보고 왔구요. 팬질은 못 했지만 뼈아저씨 사인은 받아냈고 그렇습니다. 주말쯤 감상 아닌 감상 올려 보도록 할게요 근데 96%가 크리스로 채워질 듯...U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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