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박하게 한줄 평:
닥치고 또 본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므로 주저리(스포일러有)
3월 3일에는 상암 CGV, 3월 5일에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사실 3월 1일 조조를 예매했었는데 늦게 일어나서OTL 놓쳤다. 그리고 씨지비 즐즐즐. 조낸 씨네큐브에서 보니까 영화의 하늘이 어찌나 파랗던지 같은 영화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음. 화면도 선명하고. 씨네큐브에서 할인만 해주면 이뻐해주련만.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감상은 "할 말이 없다".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음. 그냥 거기에 그들이 있었고, 나는 그냥 그들을 보았고... 에또. 펑펑 울 각오까지 하고 갔었는데, 뜻밖에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끝없는 황폐함. 상상했던 것보다는 무척이나 건조하고 담담한 영화였다. 그래서 처음엔 0.0001% 모자라-_- 다고 생각했으나 이 영화,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닥치는 후폭풍이 장난 아닌거라. 무심한듯 치고 나오던 기타 소리처럼 언뜻언뜻 떠오르는 장면들이라니 으으 결국 한 번 더 봐버렸네. 두 번은 보겠거니 생각했었지만 두 번을 본 지금은 두 번 더 볼 수 있을 것 같음.
또 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스토리가 매우 애매모호하기 때문이기도 함. 영화가 절제되어 있는 나머지 당최 이렇다할 명확한 설명 한 번 안 해주고 흘러간다.(그나마 확실한 건 에니스의 아내 알마 정도?-_-) 내가 싫어하는 '니맘대로생각하심시롱' 스타일의 영화 되겠다. 뭐 이제는 이런 방식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심히 빠지게 된다는 건 인정하지만 말이지. 툴툴.
히스 레져의 에니스 델 마와 제이크 질렌홀의 잭 트위스트. 둘 다 굉장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영화를 보면서 두 캐릭터 모두에게 심하게 공감해버렸다. 뭘 보든 특별히 신경 쓰이거나 마음이 쏠리는 캐릭터가 있기 마련인데 참 희안도 하다. 그래서 0.0001% 부족하다고 느낀 걸지도 모르겠음. 어느 한 쪽에 이입해서 따라가는 편이 보다 감상적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잭이 울부짖으면 같이 에니스 이 답답한 것아!!-_-라고 외치다가도 에니스의 어찌할 수 없는 그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니 결과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 볼 수 밖에...
잭은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눈꼽만큼은 자각하고 있었다에 한표. 그렇지 않고서야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었던, 매우 유혹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한담. 내 눈이 썩은 걸지도 모르겠으나 난 잭이 차에 기대 서있는 자세조차 심히 게이스러워 보였단 말임. 그들의 첫날=_=밤에 에니스의 손을 끌어다 아래-_-로 가져가는 것도 잭이고... 일 친 다음날 에니스가 "없던 일로 하자, 난 게이가 아냐" 라고 하자 "나도 아냐" 라고 맞받아 치는 건 순전히 에니스가 먼저 그런 식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잭은 에니스가 뭔가, 그들 관계를 발전-_-시키고자 하는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 듯. 쯧쯧.
어쨌건 둘 사이에서 적극적인 것은 항상 잭이다. 나중에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에니스가 목장이나 할까, 라고 했던 그 한마디에 메여서 둘이 함께 살며 목장을 경영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 되어버린 잭. 엽서도 먼저 보내오고 에니스가 이혼 했다니까 14시간 걸리는 거리를 한 달음에 달려오고(그것도 엄청 신나갖고 노래까지 부르면서-_-) 심지어 두번째 씬에서는 에니스가 소심하게 텐트 밖의 모닥불이나 쬐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반면 웃통 홀랑 벗고 텐트 안에 나잡아잡슈하고 누워있기도.(나야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수를 좋아하다 보니 여기서 쌍수 들고 환영했지만=_= 그보다는 이 장면을 보면서 '둘이 아주 산속에 신방을 차렸네 차렸어-_-' 란 생각이 절로;)
에니스의 태도는 잭과 달리 매우 방어적이다. 그것은 그가 어릴 때 억지로 본, 게이라는 의심을 받아 죽임 당한 시체에 대한 기억 때문이고 그 이미지에서 비롯된 공포는 항상 에니스를 따라 다닌다. 죽는 쪽이 자신이든 잭이든 에니스에게는 그들의 관계가 발각되는 것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 고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 몰래 만나는 것 뿐이다. 잭이 20년간 줄기차게 같이 살자고 해도 에니스의 생각은 완고하다. 그 정도로 강력한 굴레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
잭은 에니스의 대답에 매번 낙담하면서도 언젠가 변하겠거니, 끈기있게 기다려 보지만 20년이라는 세월에 결국 지쳐버린다. 4년 만에 재회했을 때 "이제 어쩔거야?" 라는 잭의 물음에 에니스는 "뭘 어쩔거야, 텍사스에는 네 아내와 아이가 있고 이곳에는 내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라고 대답하지만, 분명히 잭이 기대했던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소식에 이번에야 말로, 싶어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달려오지만 그들을 방해하는 문제는 에니스가 결혼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잭은 그 길로 멕시코로 향한다. 다른 남자와 자기 위해. 올 때와는 달리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에니스가 같이 살자, 고 한마디만 했으면 당장 그러마하고 이혼해버렸을 잭이지만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20년이나 기다렸음에도 기약이 없자 토해내듯 말한다. 이제는 기다리는데 지쳤다, 널 어떻게 끊어내면 좋을지 모르겠다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라고. 사실 잭은 답을 알고 있었지. 사건은 사건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지워내는 것이니까. 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이긴 하지만.
이렇게 보면 잭과 비교했을 때 에니스가 무정하게만 보이지만 에니스 역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잭이 오기로 한 날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한쪽 다리를 달달 떨며-_- 기다리는 모습이나 그 폭발적인 키스씬 등등...(그런데 그렇게 해놓고 나몰라라 한단 말이지. 으이고.) 다만 에니스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힐 뿐이다. 때때로 곯아서 터져나오기도 하고. 산에서 내려와 잭과 헤어진 후의 구토 장면이나 둘의 마지막 만남에서 기어이 무너져 내리던 모습은 정말이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친다고 밖엔 할 말이 없음.
그렇게 헤어지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에니스는 잭에게 엽서를 보낸다.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에니스쪽에서 처음으로 먼저 잭에게 보낸 것일 그 엽서는, '수취인 사망' 도장을 달고 반송된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잭의 죽음은 아주 모호하게 처리되었으나 잭의 부모님 입에서 목장 감독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그가 에니스를 떠나 목장 감독에게 갔고, 그로 인해 게이 배싱 당한 것이라고 생각 중. 단순히 그 장면은 에니스의 상상일 뿐이고 로린의 말대로 잭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저렇게 생각하고 싶다. 뭐 에니스의 시점인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에니스가 더 이상 잭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겠지만. 잭이 살아있는 동안 그를 내내 기다리게만 했던 에니스는 이제 평생 동안 후회를 안고 그를 그리며 살아가야 한다. 안으로 계속 곯아가면서.
셔츠 장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겠음. 젠장...
내가 이 영화에서 찾은 범인류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있을 때 잘 하자.
...-_-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잖...
보는 동안은 생각지 못 했는데 나중에야 퍼뜩 떠오른 것 하나. 그들은 그 20년간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잭조차도 보고싶다거나 그립다고는 말 하지만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들은 그런 시대에 살았으니까.
에니스의 마지막 대사 "Jack, I swear" 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는데 씨네큐브에서 본 잡지에 '사랑한다' 는 말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에니스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 이라는 글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이렇게 생각하니 꽤 그럴듯 하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 두 곡이 아주 지대로 안습. 내 멋대로 처음에 나오는 'He was a Friend of Mine' 은 에니스쏭, 그 다음 나오는 'The Maker Makes' 는 잭쏭이라고 부르고 있음. 결국 씨네큐브에서 할인가에 파는 OST 집어왔다. -_) 엠피삼 용량 다 찬지 오래거늘 이를 어쩐다. 1년도 안 돼서 1기가를 다 채우게 될 거라고는;; 백조 이후 음악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빠듯하기도 하고-_-;; 허허 참.
보고 나면 휑하니 울적한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보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담. 그래도 이런 걸 여러번 볼 생각이 들다니. 좋다. 이정도면. Y자도 쳐다보기 싫어했던 때보다는 훨 낫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만 절대로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지는 않다. 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생지옥이잖아 이거. 사실 '그 사람이라서 힘든 사랑이었지만 그 사람이라서 벅찬 사랑이었습니다' 이 광고글도 마음에 안 든다. 쯥. 동성애에서 '그 사람이라서...' 운운하는 건 쩜 위험하다고 생각함. 뭐 에니스는 짤없이 이 케이스긴 하다만, 아무튼 저 광고글은 벨로임.
브로크백 보면서 내가 남남커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상황이 시작부터 이미 비극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음. 남녀커플은 아무리 험난한 사랑이라도, '너넨 남녀면서 뭐가 불만이냐-_-' 라는 생각이 들어버림. 내게는 너무 식상하다는 소리임. 아마도 동성애가 지탄을 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있어 하지는 않았을 것임. 아놔 이러면 안 되는 건 아는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에니스와 잭의 초야씬. 그거 초짜가 할 수 있는 체-_-위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 생각 때문에 그 중요 장면;에서 몰입도가 확 떨어져 버렸음. 캐빈이 지적해줘서 알아챘지만 그 다음날 잭이 멀쩡하게 텐트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도 좀...-_- 삐씬들은 딱 15금 정도라는 느낌. 오히려 둘이 홀딱 벗고 강물에 뛰어들 때가 살짝 아실아실했... 에잇 고만하자.
이런저런 이유로 삐씬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건 키스씬들. 그 거칠고 서툰, 모든 것을 다 거는 듯한 행위가 지독하게 취향. 오죽하면 에니스와 잭이 4년 만에 재회한 후의 키스씬에서 제이크의 코뼈가 부러질 뻔 했다질 않은가. 기자들이 지겹게 던지는 "키스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란 질문에 단 한마디로 "까졌죠"(어디가?!;) 라거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라고 대답하는 두 사람. 하하하.
어디선가 본 히스 레져 인터뷰 중 한토막.
Q: 매우 사실적인 동성애 장면이 등장하는데,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H: 긴장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첫 장면을 찍고 나서 떨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사람 하는 일인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님하쵝오.d-_-b 이렇게 명쾌한 답변은 처음 보네그려.
난생 처음으로 아카데미 생중계를 챙겨 봤다. 오후반이 된 보람이 있...을 뻔 했으나 각색각본감독작품상 나오기 직전에 나가야 했음. ㅁ;ㅣㄴ아럼 ㅏㄴㅇ러 젠장-┏ 나중에 보니 브록백은 작곡상 각색상 감독상 수상. 남우주연하고 남우조연 아깝다. 후음.
오늘 강의 다 끝나고 애니 프루의 원작과 영화 대본이 같이 있는 원서를 질렀다. 후후후하하하하. 이거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하게 빠졌나벼? 원작은 좀 미루고(..) 일단 대본부터 정독해서 다음에 영화 볼 때는 자막 안 보고 보는 것이 목표. 교생 때문에 3월 27일에 시험을 보는 과목이 하나 생겨버렸는데orz 그 전까지 영화 두 번 더 봐야겠다.
끝으로 나를 버닝하게 했던 모든 대상들에게 한마디.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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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또 본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므로 주저리(스포일러有)
3월 3일에는 상암 CGV, 3월 5일에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사실 3월 1일 조조를 예매했었는데 늦게 일어나서OTL 놓쳤다. 그리고 씨지비 즐즐즐. 조낸 씨네큐브에서 보니까 영화의 하늘이 어찌나 파랗던지 같은 영화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음. 화면도 선명하고. 씨네큐브에서 할인만 해주면 이뻐해주련만.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감상은 "할 말이 없다".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음. 그냥 거기에 그들이 있었고, 나는 그냥 그들을 보았고... 에또. 펑펑 울 각오까지 하고 갔었는데, 뜻밖에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끝없는 황폐함. 상상했던 것보다는 무척이나 건조하고 담담한 영화였다. 그래서 처음엔 0.0001% 모자라-_- 다고 생각했으나 이 영화,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닥치는 후폭풍이 장난 아닌거라. 무심한듯 치고 나오던 기타 소리처럼 언뜻언뜻 떠오르는 장면들이라니 으으 결국 한 번 더 봐버렸네. 두 번은 보겠거니 생각했었지만 두 번을 본 지금은 두 번 더 볼 수 있을 것 같음.
또 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스토리가 매우 애매모호하기 때문이기도 함. 영화가 절제되어 있는 나머지 당최 이렇다할 명확한 설명 한 번 안 해주고 흘러간다.(그나마 확실한 건 에니스의 아내 알마 정도?-_-) 내가 싫어하는 '니맘대로생각하심시롱' 스타일의 영화 되겠다. 뭐 이제는 이런 방식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심히 빠지게 된다는 건 인정하지만 말이지. 툴툴.
히스 레져의 에니스 델 마와 제이크 질렌홀의 잭 트위스트. 둘 다 굉장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영화를 보면서 두 캐릭터 모두에게 심하게 공감해버렸다. 뭘 보든 특별히 신경 쓰이거나 마음이 쏠리는 캐릭터가 있기 마련인데 참 희안도 하다. 그래서 0.0001% 부족하다고 느낀 걸지도 모르겠음. 어느 한 쪽에 이입해서 따라가는 편이 보다 감상적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잭이 울부짖으면 같이 에니스 이 답답한 것아!!-_-라고 외치다가도 에니스의 어찌할 수 없는 그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니 결과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 볼 수 밖에...
잭은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눈꼽만큼은 자각하고 있었다에 한표. 그렇지 않고서야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었던, 매우 유혹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한담. 내 눈이 썩은 걸지도 모르겠으나 난 잭이 차에 기대 서있는 자세조차 심히 게이스러워 보였단 말임. 그들의 첫날=_=밤에 에니스의 손을 끌어다 아래-_-로 가져가는 것도 잭이고... 일 친 다음날 에니스가 "없던 일로 하자, 난 게이가 아냐" 라고 하자 "나도 아냐" 라고 맞받아 치는 건 순전히 에니스가 먼저 그런 식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잭은 에니스가 뭔가, 그들 관계를 발전-_-시키고자 하는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 듯. 쯧쯧.
어쨌건 둘 사이에서 적극적인 것은 항상 잭이다. 나중에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에니스가 목장이나 할까, 라고 했던 그 한마디에 메여서 둘이 함께 살며 목장을 경영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 되어버린 잭. 엽서도 먼저 보내오고 에니스가 이혼 했다니까 14시간 걸리는 거리를 한 달음에 달려오고(그것도 엄청 신나갖고 노래까지 부르면서-_-) 심지어 두번째 씬에서는 에니스가 소심하게 텐트 밖의 모닥불이나 쬐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반면 웃통 홀랑 벗고 텐트 안에 나잡아잡슈하고 누워있기도.(나야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수를 좋아하다 보니 여기서 쌍수 들고 환영했지만=_= 그보다는 이 장면을 보면서 '둘이 아주 산속에 신방을 차렸네 차렸어-_-' 란 생각이 절로;)
에니스의 태도는 잭과 달리 매우 방어적이다. 그것은 그가 어릴 때 억지로 본, 게이라는 의심을 받아 죽임 당한 시체에 대한 기억 때문이고 그 이미지에서 비롯된 공포는 항상 에니스를 따라 다닌다. 죽는 쪽이 자신이든 잭이든 에니스에게는 그들의 관계가 발각되는 것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 고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 몰래 만나는 것 뿐이다. 잭이 20년간 줄기차게 같이 살자고 해도 에니스의 생각은 완고하다. 그 정도로 강력한 굴레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
잭은 에니스의 대답에 매번 낙담하면서도 언젠가 변하겠거니, 끈기있게 기다려 보지만 20년이라는 세월에 결국 지쳐버린다. 4년 만에 재회했을 때 "이제 어쩔거야?" 라는 잭의 물음에 에니스는 "뭘 어쩔거야, 텍사스에는 네 아내와 아이가 있고 이곳에는 내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라고 대답하지만, 분명히 잭이 기대했던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소식에 이번에야 말로, 싶어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달려오지만 그들을 방해하는 문제는 에니스가 결혼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잭은 그 길로 멕시코로 향한다. 다른 남자와 자기 위해. 올 때와는 달리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에니스가 같이 살자, 고 한마디만 했으면 당장 그러마하고 이혼해버렸을 잭이지만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20년이나 기다렸음에도 기약이 없자 토해내듯 말한다. 이제는 기다리는데 지쳤다, 널 어떻게 끊어내면 좋을지 모르겠다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라고. 사실 잭은 답을 알고 있었지. 사건은 사건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지워내는 것이니까. 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이긴 하지만.
이렇게 보면 잭과 비교했을 때 에니스가 무정하게만 보이지만 에니스 역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잭이 오기로 한 날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한쪽 다리를 달달 떨며-_- 기다리는 모습이나 그 폭발적인 키스씬 등등...(그런데 그렇게 해놓고 나몰라라 한단 말이지. 으이고.) 다만 에니스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힐 뿐이다. 때때로 곯아서 터져나오기도 하고. 산에서 내려와 잭과 헤어진 후의 구토 장면이나 둘의 마지막 만남에서 기어이 무너져 내리던 모습은 정말이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친다고 밖엔 할 말이 없음.
그렇게 헤어지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에니스는 잭에게 엽서를 보낸다.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에니스쪽에서 처음으로 먼저 잭에게 보낸 것일 그 엽서는, '수취인 사망' 도장을 달고 반송된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잭의 죽음은 아주 모호하게 처리되었으나 잭의 부모님 입에서 목장 감독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그가 에니스를 떠나 목장 감독에게 갔고, 그로 인해 게이 배싱 당한 것이라고 생각 중. 단순히 그 장면은 에니스의 상상일 뿐이고 로린의 말대로 잭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저렇게 생각하고 싶다. 뭐 에니스의 시점인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에니스가 더 이상 잭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겠지만. 잭이 살아있는 동안 그를 내내 기다리게만 했던 에니스는 이제 평생 동안 후회를 안고 그를 그리며 살아가야 한다. 안으로 계속 곯아가면서.
셔츠 장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겠음. 젠장...
내가 이 영화에서 찾은 범인류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있을 때 잘 하자.
...-_-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잖...
보는 동안은 생각지 못 했는데 나중에야 퍼뜩 떠오른 것 하나. 그들은 그 20년간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잭조차도 보고싶다거나 그립다고는 말 하지만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들은 그런 시대에 살았으니까.
에니스의 마지막 대사 "Jack, I swear" 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는데 씨네큐브에서 본 잡지에 '사랑한다' 는 말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에니스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 이라는 글을 보고 무릎을 쳤다. 이렇게 생각하니 꽤 그럴듯 하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 두 곡이 아주 지대로 안습. 내 멋대로 처음에 나오는 'He was a Friend of Mine' 은 에니스쏭, 그 다음 나오는 'The Maker Makes' 는 잭쏭이라고 부르고 있음. 결국 씨네큐브에서 할인가에 파는 OST 집어왔다. -_) 엠피삼 용량 다 찬지 오래거늘 이를 어쩐다. 1년도 안 돼서 1기가를 다 채우게 될 거라고는;; 백조 이후 음악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빠듯하기도 하고-_-;; 허허 참.
보고 나면 휑하니 울적한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보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담. 그래도 이런 걸 여러번 볼 생각이 들다니. 좋다. 이정도면. Y자도 쳐다보기 싫어했던 때보다는 훨 낫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만 절대로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지는 않다. 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생지옥이잖아 이거. 사실 '그 사람이라서 힘든 사랑이었지만 그 사람이라서 벅찬 사랑이었습니다' 이 광고글도 마음에 안 든다. 쯥. 동성애에서 '그 사람이라서...' 운운하는 건 쩜 위험하다고 생각함. 뭐 에니스는 짤없이 이 케이스긴 하다만, 아무튼 저 광고글은 벨로임.
브로크백 보면서 내가 남남커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상황이 시작부터 이미 비극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음. 남녀커플은 아무리 험난한 사랑이라도, '너넨 남녀면서 뭐가 불만이냐-_-' 라는 생각이 들어버림. 내게는 너무 식상하다는 소리임. 아마도 동성애가 지탄을 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있어 하지는 않았을 것임. 아놔 이러면 안 되는 건 아는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에니스와 잭의 초야씬. 그거 초짜가 할 수 있는 체-_-위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 생각 때문에 그 중요 장면;에서 몰입도가 확 떨어져 버렸음. 캐빈이 지적해줘서 알아챘지만 그 다음날 잭이 멀쩡하게 텐트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도 좀...-_- 삐씬들은 딱 15금 정도라는 느낌. 오히려 둘이 홀딱 벗고 강물에 뛰어들 때가 살짝 아실아실했... 에잇 고만하자.
이런저런 이유로 삐씬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건 키스씬들. 그 거칠고 서툰, 모든 것을 다 거는 듯한 행위가 지독하게 취향. 오죽하면 에니스와 잭이 4년 만에 재회한 후의 키스씬에서 제이크의 코뼈가 부러질 뻔 했다질 않은가. 기자들이 지겹게 던지는 "키스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란 질문에 단 한마디로 "까졌죠"(어디가?!;) 라거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라고 대답하는 두 사람. 하하하.
어디선가 본 히스 레져 인터뷰 중 한토막.
Q: 매우 사실적인 동성애 장면이 등장하는데,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H: 긴장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첫 장면을 찍고 나서 떨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사람 하는 일인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님하쵝오.d-_-b 이렇게 명쾌한 답변은 처음 보네그려.
난생 처음으로 아카데미 생중계를 챙겨 봤다. 오후반이 된 보람이 있...을 뻔 했으나 각색각본감독작품상 나오기 직전에 나가야 했음. ㅁ;ㅣㄴ아럼 ㅏㄴㅇ러 젠장-┏ 나중에 보니 브록백은 작곡상 각색상 감독상 수상. 남우주연하고 남우조연 아깝다. 후음.
오늘 강의 다 끝나고 애니 프루의 원작과 영화 대본이 같이 있는 원서를 질렀다. 후후후하하하하. 이거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하게 빠졌나벼? 원작은 좀 미루고(..) 일단 대본부터 정독해서 다음에 영화 볼 때는 자막 안 보고 보는 것이 목표. 교생 때문에 3월 27일에 시험을 보는 과목이 하나 생겨버렸는데orz 그 전까지 영화 두 번 더 봐야겠다.
끝으로 나를 버닝하게 했던 모든 대상들에게 한마디.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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