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님 답글이 너무 늦어졌네요.ㅜㅜ; 댓글에 쓰려니 너무 길어져서 따로 올립니다. 생각이 아직 덜 정리되었지만 어차피 제 머리로는 완벽하게 정리하기가 불가능 + 시간을 계속 끌어 봤자 괜한 기대만 하시게 하는 것 같아서 일단 지르고 봅니... 늘 그렇듯 쓰다 보면 좀 나아지리라 믿으며-_;;

사실 댓글에 쓰신 내용은 저에게 있어 3시즌을 관통하는 내 인생의 질문-_; 같은 거라서요. 정확하게는 "왜 같은 드라마를 보고도 사람들 생각과 내 생각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라는 의문이 들었고, 3시즌 종영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도대체 답을 알 수가 없네요. 댓글에 말씀하신 바와 비슷한 반응을 국내 웹에서 굉장히 많이 봤는데 저는 전혀 공감이 안 되었달까, 완전히 반대로 느꼈거든요.

갭이 너무 심해서 이 차이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엄청 궁금하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국내의 모 사이트는 사이트 특성상 비방에 가까운 글들이 주로 올라와서 큰 도움은 안 되었고, 그나마 텀블러에서는 다양한 시각의 논의가 오가길래 복습도 제치고(!) 계속 텀블러를 헤매고 있는데 특별히 이렇다 할 결론은 안 나네요. 제가 저인 이상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완벽하게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앞으로도 답을 내긴 어려울 것 같고(라지만 보통은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이해되는 법인데 이번 경우에는 공감이 전혀 안 가는 반응이 너무 많아서 아주 도를거가튼 기분임미닼ㅋㅋ) 대신 '제 느낌과 그렇게 느낀 이유' 를 한 번 나열해 볼까 합니다.




#1. 셜록이 매그너슨을 (vs 존이 캐비를)

우선 저도 캐비와 매그너슨의 작품 내 중요도가 다르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캐비는 쪼렙 몹이고 매그는 최종 보스라는 느낌이죠ㅋㅋ 그럼에도 저는 문제의 장면을 보는 순간 엄청난 희열-_;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



1) 원작의 영향
드라마 이전에 원작의 팬이었기 때문에 매그너슨이 원작대로 1회용(한 시즌용) 악당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고, 역시 원작대로 셜록의 숙적은 모리아티 하나면 충분하다(모리아티를 넘어서는 악당이 계속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원작은 음모론적 악당이나 사건이 도사리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 모리아티조차 코난 도일이 홈즈를 죽이기 위해 급조한 악당이니까요.(ㅋ...)
소새끼 모팻 vs 애증의 도일



2) 모리아티와 매그너슨
매그너슨이 모리아티를 넘어선다는 말은 능력의 우위를 비교하려는 뜻이 아니라, 둘이 다른 종류의 악당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303에서 홈즈 형제가 나눈 대화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요.

마: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매그너슨을 왜 그렇게 싫어하지? 네 취향의 퍼즐은 아니잖아.
셜: 그놈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비밀을 먹이로 삼으니까. 그러는 형은 왜 안 싫어하는데?
마: 중요 인사들한테는 큰 피해를 끼치지 않거든. 그런 쪽으로 머리가 아주 비상해. 매그너슨은 사업가일 뿐이야. 가끔은 우리에게 유용하기도 하지. 필요악이랄까. 네가 잡으러 갈 용 같은 게 아니라고.
셜: 형은 내가 용잡이 같은 걸로 보여?
마: 아니. 네 눈엔 네가 용잡이처럼 보이겠지만.

모리아티는 셜록의 퍼즐이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 같은,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악당이죠. 이 점은 203에서 모리아티 본인이 스스로-_; 이야기꾼이라는 위장 신분을 내세우고 택시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과 상통합니다. (사실 작가들이 이 설정을 다시 끌어와서 매그너슨을 모리아티와 대비되는 악역으로 만들었다고 봐야 맞겠죠)

매그너슨은 지극히 현실적인, 마형님 말대로 '사업가'일 뿐인 악당입니다. 철저히 손익 계산만을 따져서 행동할 뿐이에요. 순수한 즐거움이나 자기 만족 등등이 행동 동기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모리아티나 셜록과는 아주 다른 부류의 인간이죠. (물론 자기 소유로 만든 상대의 얼굴을 치거나 실내에 소변을 누며 즐거워하기는 하지만 취향이니까 존중...이 아니고-_; 그건 부수입인 셈이지 목적은 아니니까요)

셜록을 퍼즐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 비유한다면 매그너슨은 실제로도 비즈니스를 하는 현실적인 '어른'입니다. 아이와 어른의 싸움이니 애초에 셜록과 매그너슨은 서로에게 적합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프트라면 매그너슨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겠지만, 마횽이 말했듯 마횽과 매그너슨은 어떻게 보면 공생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를 적으로만 여기지는 않죠. 적군과 아군의 뚜렷한 구분이 없는 어른의 세계, 어른들의 이해 관계랄까요.

아무튼 이런 이유로 저는 매그너슨이 계속 존재하면 원작의 변주를 넘어서서 이 시리즈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거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셜록의 진정한(?) 적수인 모리아티의 컴백을 쌍수 들고 환영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이놈의 작가들이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떡밥을ㅋㅋ 삐끗하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은뎈ㅋㅋ)



3) 셜록의 변화
그렇다면 3시즌에서는 1회용이나마 왜 이런(셜록의 상대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악당을 내놓았나. 드라마 속에서는 왜 셜록이 자기 타입도 아닌 악당을 자기 상대로 선택했나.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것 역시 두 형제의 대화에 표면적인 이유가 나오죠. 평범하지 않은, 남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뜯어먹고 사는 놈이라 싫다고요. 셜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좀 읭?스럽지 않나요. 전 이게 2시즌까지의 셜록이 할 법한 대사는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아마도 스몰우드 여사가 3시즌 이전에 셜록을 찾아가서 '우리 남편이 미성년자와 관계했던 증거를 없애 주시오' 했으면 면전에 대고 보륑하다며 내쫓았을 지도...-_;;

사실 스몰우드 여사의 의뢰 자체만으로는 지금의 셜록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테지만, 이 사건의 배후는 매그너슨이니까요. 매그너슨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이고 그 '다른' 사람들의 범주에는 셜록은 물론 존(그리고 나중에는 존이 선택한 메리까지)도 포함된다는 걸, 셜록이 모를 수는 없겠죠.

셜록 혼자만 위협 받는 상황이라면 무시했겠지만 존도 걸려 있으니... 더 나아가 존이 대변하는 '남들과는 "다른" 사람들'까지 셜록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caring)'는 점. 전 이 부분을 셜록의 캐릭터가 변화(발전)한 지점이자 작가들이 말하는 셜록의 영웅화라고 봤습니다. 셜록이 존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존이 셜록에게 있어 일종의 기준, 척도가 되어 준다는 얘기도 이런 의미겠죠.



4) 어린 시절의 재현
한 마디로 작가들이 셜록으로 하여금 매그너슨을 상대하게 한 것 자체가 이미 셜록이 변화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장치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상대방의 차원이 달라졌으니 셜록이 기존에 쓰던 방식(두뇌 싸움)으로는 게임이 성립하지 않는 거고요. 긴박감을 덜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전 그 장면에서 엄청 긴장을... 아니지, 셜록의 절망이 너무 절절하게 다가와서 다른 건 신경을 전혀 못 썼다고 해야겠군요. 어른의 세계와 정면으로 맞섰다가 무참히 박살난 아이의 좌절과 무력함 같은 게 아주ㅠㅠ

사실 이게 셜록이 살면서 처음 겪은 좌절은 아닐 거예요. 꽤 많았겠죠. 그리고 최초는 레드비어드의 죽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드비어드가 병에 걸렸는지 사고를 당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동물을 안락사시킴으로써 편하게 해준다는 개념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멀쩡히 살아 있는 내 친구를 어른들이 왜 죽이려 하는지, 왜 우리가 지금 헤어져야만 하는지, 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지...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듯 현재 레드비어드는 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302에서 마형님은 셜록에게 레드비어드를 언급함으로써 '또' 쓸데없이 정 같은 걸 줬다가는 어렸을 때처럼 상처를 받을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만, 셜록은 더 이상 힘없는 어린애가 아니죠. 셜록 말대로 '애가 아닌' 건 아니지만-_; 여전히 어린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하고는 다르고, 그래서 존(과 존이 선택한 메리)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모두 뭉개졌을 때, 그때 셜록의 그 표정이란.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서 매그너슨이 존의 얼굴을 튕기는 꼴이나 봐야 하는 셜록의 무력함과 좌절과 분노와 혐오 으마ㅣㄴㅇ러; ㅏㅓㅁ 숨겨 왔던 내 안의 셜록맘이 깨어난다ㅏㅏㅏㅏㅏ 근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잖아요. 셜록내새끠가 오줌누센의 대가리를 꽝 날려 버렸잖아여. 제가 여기서 뭘 더 바라겠음미까 한강 고수부지에서 쾌지나칭칭나네 상모를 돌려도 저의 희열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메리크리쓰마쓰!!!!



5) 인간적인 선택
지...진정하고-_;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 처음부터 매그너슨과의 게임은 셜록이 두뇌 싸움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셜록은 매그너슨의 지하실이 실제로 있다고 가정했던 시점에 이미 패배한 셈이니까요. 막다른 곳에 몰린 상황에서 셜록이 두뇌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작가들이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만, 기존의 방식대로 해결하는 방법은 3시즌에서 셜록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 주고자 하는 작가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았던 거죠.

셜록이 머리 싸움에서 지고 총질이나 한 게 무슨 성장이냐는 의견도 많이 봤습니다만 셜록의 변화/성장에 대한 팬들의 정의가 작가들의 생각과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들은 셜록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건 아니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가진 걸 버릴 줄 아는 인간으로 변화하길 바랐던 거고 그래서 셜록을 극단적인 상황(두뇌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몰아넣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거죠.

1시즌에서처럼 셜록이 단순히 추리 기계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선택을요. 동시에 현실적인 사업가인 매그너슨이나 마횽은 계산에 넣지도 않을 방법이기도 합니다. 셜록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뭐? 방식 따위 엿머거라! 하고 판을 엎어 버린 거죠. 선택의 순간에 앞뒤 계산 같은 건 있지도 않았어요. 그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 그 추리 기계가. 오로지 친구 하나를 위해서. 자기 세계를 부정하다니.

아름답지 않슴미까. 제가 셜존 더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이유이긴 하지만-_; 전 이렇게 인간적인 결함이 있는 셜록이 정말 좋습니다. (우리 셜로기가 이러케 컷꾸나 끄흡흒...) 여하간 셜록은 현재의 친구인 존을 지켜 내고, 그럼으로써 어린 시절의 친구 레드비어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트라우마까지 극뽁했답니다. ~일석이조 해피 엔딩~



6) 소소한 배경
제가 셜록의 선택에 희열을 느낀 건 전에도 말했듯 최악의 결말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셜록의 실수나 선택으로 메리가 희생되고 그로 인해 "존과 셜록의 사이가 틀어진다"는... 이딴 식이었으면 전 밥상 아니 모니터를 엎었을 듯옄ㅋ 지나친 궁예질, 더쿠의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작가들이 셜록 홈즈 시리즈의 본질은 홈즈와 왓슨의 우정에 있다는 걸 아직은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느꼈습니다.ㅋ_ㅋ

그리고 제가 이렇게까지 셜록에게 빙의-_;해서 공감하게 된 배경에는 (1) 영자막으로 봤는데 대충 넘겨 읽기는 싫으니 모든 장면을 문장 단위로 끊어서 느릿느릿 봄 (2) 301을 보고 당황해서 셜록의 심정을 파악하려다 보니까 3시즌 전체를 셜록의 눈으로 보게 됨.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1번의 경우는 다른 팬들과 제 감상이 다른 데 꽤 일조했지 싶습니다. 셜록이 변화한 방향(인간화) 자체에는 공감하더라도 너무 급격한 변화였다는 반응이 많더군요. 302와 303은 에피 안에서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그 기간 동안 셜록이 감정적인 경험을 많이 겪는데도 말이죠.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저는 워낙 천천히 봐서 그런지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듯합니다.




실은 이미 3시즌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한테는 제 글이 별로 공감이 안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팬들의 글을 봐도 그렇거든요.ㅠㅜ 그리고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캐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게 제가 간신히 얻은 결론입니다. 애초에 서로 생각하고 있던 캐릭터 해석이 다르니 의견 차가 좁혀지질 않는 거죠. 이건 작품의 성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추리물이다 vs 모험/우정/성장물 등등이다.

다음에는 그에 대해 써 볼까 합니다. 역시 너무 기다리진 마시고ㅠㅠ 이제는 ㅈ님이나 저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닌 일단 뽑은 칼이니 허공이라도 베겠다는 오기만이...ㅋㅋㅋ 쓰기 시작할 땐 이렇게 길어질 줄 정말 몰랐어욬ㅋㅋ 나는 왜 발만 네 개인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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